반응형

전체 글 53

오렌지와 빵칼(청예)

밑줄 긋기 이렇게도 말할 수 있겠다. 은주는 사람을 사랑했다. 그러므로 그녀는 사람을 미워했다. 나 또한 그런 은주를 정말 좋아했다. 그래서 은주를 증오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실망시킬 때는 주저하지 말고 숨을 쉬자. 타인을 실망시켰다는 절망이 목을 조여 오지 못하도록, 들이 쉬고 내쉬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했다. 내가 또 네 마음의 허리를 꺾었구나, 이 세상이 오와 열에 맞추어 잘 굴러갈 수 있게끔 헌신하는 사람을 내가 불편하게 만들었다. 아무리 생각 해도 이 모든 잘못에 이름표를 붙여줘야 한다면, 오영이라고 적어야만 했다. 오늘의 나는 지난 기념일에 수원과 맞춘 커플 속옷을 입었다. 은주가 선물해 준 노란 셔츠도 입었다. 나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로 겉껍질을 만들었으니, 알맹이만큼은 나의 선택으로 바꾸..

혼모노(성해나)

밑줄 긋기이웃들은 평창동 시택을 '연리목집'이라 불렸다.남편 여어나던 해에 시부는 마당에 음나부와 느티나무 를 나란히 심었다. 상생하기 어렵다는 두 나무는 뿌리부터 서로 끌어안는 형태로 조금씩 업허며 자랐고 시댁은 이후 연리목이 자라는 집, 사랑이 가득한 집이라 불렸다 이웃들은 모르겠지만 시댁 마당의 그 나무는 실상 시부가 인위적으로 매만진 연리였다. 치목 두그루를 한폭 너비로 심은 뒤 줄기 부분을 긁어내고 비닐 끈으로 단단히 묶어 서로 얽히게 만든 연리. 가만 보면 저 양반이나 너나 꼭 닮았어. 뭐가요?사랑에 갈급해서 제가 받지 못한 걸 죄 자식에게 쥐여 주려고 하잖니.

카테고리 없음 2025.08.13

설자은, 불꽃을 쫓다(정세랑)

밑줄 긋기 자은이 어릴 때에도 비슷한 말들을 외치며 헤매는 자들이 있었고, 천세가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듯 했다. 과연 존재한 적 있을지 의심스러운, 무구했던 지난날로 돌아가자며 눈앞의 모든 것을 오손이라 명하고 내치려는 자들이었다. 그 말들은 단지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비롯되는가? 그럴 리 없다. 그보다는 허공을 휘감은 염오의 기운을 그대로 받아내 외치는 것에 가까울 것이었다. 광증이 없는 이들도 입을 다물 줄 알 뿐, 흉중은 흡사할지 몰랐다. "어찌되었든 날을 더해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입버릇 같은 혼잣말을 거듭했다. 누구나 더이상 새날이 주어지지 않을 때까지 날을 더해가며 산다. 그뿐이다. 야단을 떨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고 경망스러운 자들이나 달리 굴 것이다. 일어난 일들, 일으킨 일들 모조리..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정세랑)

티스토리... 글감 기능을 없앴어?....^^ 전에 추천 받기도 했고, 정세랑 작가가 장르소설에 시리즈물을 냈다길래 궁금증에 읽기 시작했다. 게다가 시대물이야. 어려운 길을 가는구나..라고 생각함.기존작들에 비해 엄청 취향은 아니지만 정말 정세랑 작가스러운 책인 듯.하.. 10권 넘게 작업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빨리 완결내줬음 좋겠음. 결말이 궁금해.완결을 빨리 내고 외전을 10권 넘게 내주시면 안되나요(?) 밑줄 긋기 "여인의 몸으로 그 멀리 갔다가 들켜서 죽어버리란 말이야?" "사람이 죽고 사는 건 여기 있어도, 아무리 한 자리에 머물러도 마찬가지다. 우린 이제 그걸 알지 않니?" "처음엔, 호은 오빠가 미쳤다고 생각했지 뭐야." 도은이 자은의 옷매무새를 고쳐주며 털어놓았다. "이런 위험한 일을 ..

너의 유토피아(정보라)

너의 유토피아부커상과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로 선정되었던 정보라의 두 번째 소설집 《너의 유토피아》가 2025년 1월 래빗홀에서 다시 출간되었다. 2021년 출간된 《그녀를 만나다》의 개정판인 이 책은 폐허의 오늘에서 더 나은 세계를 향해 가는 꾸준한 노력을 담아낸 〈너의 유토피아〉를 표제작으로 삼고, 새로운 순서와 장정, 더 정교히 다듬어진 문장으로 정비되어 독자를 만날 채비를 마쳤다. 안톤 허의 번역으로 지난해 영문판 Your Utopia가 미국, 영국, 인도, 호주저자정보라출판래빗홀출판일2025.01.15 차례영생불사연구소(영생해도 일은 해야하는구나)너의 유토피아(너의 유토피아는..? 314야 그게 대체 먼 말이니)여행의 끝(사귈래 죽을래(먹는다))아주 보통의 결혼(내 부인이 외계인?)One Mor..

어린이는 멀리 간다(김지은)

어린이는 멀리 간다김소영의 ‘어린이라는 세계’가 생각나는 책. 사실 후속작인 줄 알았다. 아동 청소년 문학 평론가의 책이었음.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으면서는 내 주변을 스쳐 지나간 어린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면 이 책을 읽으면서는 어린 날의 내가 떠올랐다. 책상 아래에 쭈구려 앉아 동화책을 읽던 나의 모습, 차 타고 멀리 떠나면서도 꼭 한 권을 챙겨 보던 나의 모습.. 동화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책밑줄 긋기어린이는 귀하다. 오늘로부터 가장 멀리 떠날 사람이기 때문에 매 순간 소중하다. 어린이는 우리 곁을 떠나 늘 멀리 간다. 용감하게 떠나는 것이 어린이의 일이라면 정성껏 돌보고 사랑을 주어서 잘 보내는 것은 어른의 일이다.어려서부터 의견을 독립적으로 인정받고 그 의견을 표현해서 현실을 바꾸어 보는 경험은 소..

드리머(모래)

드리머오랜 시간 알고 지내던 네 인물이 옛 사이비 종교와 관련된 수첩을 얻으면서 겪게 되는 기나긴 일대기를 다룬 오컬트 스릴러 장편소설 『드리머』가 출간되었다. 게임 회사 CEO이자 가장 성공한 사업가로 추앙받는 ‘명우’, 사고로 딸의 잃은 슬픔에 잠긴 ‘필립’, 냄새를 맡는 것마다 온 세상의 고통이 느껴지는 ‘여정’, 노숙자 쉼터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게 취미이지만 동시에 망나니 기질로 넘쳐나는 ‘기철’. 이 네 사람은 현재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지만저자모래출판고블출판일2025.02.14랍비들의 가르침에 전해 내려온 이야기다.유대인 네 사람이 과수원에 들어갔는데, 그들의 이름은 벤 아자이, 벤 조마, 아헤르, 그리고 랍비 아키바였다.랍비 아키바가 그들에게 말했다.“수정 같이 맑은 대리석에 이르렀을..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양귀자)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1992년 초판이 나오자마자 페미니즘 논란과 함께 화제의 중심에 오른 양귀자의 장편소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저자가 펴낸 두 번째 장편소설로, 젊은 여성이 인기 남자배우를 납치해 감금하고 조종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성 억압의 현실을 고스란히 뒤집어 학대당하고 조련당하는 남성을 보여주는, 앞선 페미니즘 소설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공격적인 방법으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의 불평등 문제를 제기하면서 처음부터 소설의 흡인력을 최대치로저자양귀자출판쓰다출판일2019.04.20 강민주씨, 당신 자의식이 너무 비대한 것 아닙니까?! 밑줄 긋기 삶이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절망의 텍스트다. 나는 오늘 이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나는 텍스트 그 자체를 거부하였다. ..

사랑과 결함(예소연)

사랑과 결함데뷔 3년 만에 이효석문학상·문지문학상·황금드래곤문학상을 석권하며 한국문학의 기대주로 자리매김한 예소연의 첫 소설집 『사랑과 결함』이 출간되었다. 2021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한 예소연은 “옳은 이야기를 하려는 소설이 아니라 감각하는 바를 이야기하는 소설”(편혜영)이라는 예감에 값하듯 애써 무언가를 증명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을 발표하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동시대의 감수성을 증언해왔다. 한 작가의 시작을 알리듯 뜨거운저자예소연출판문학동네출판일2024.07.26책 표지가 참 예쁘군요. 수록작우리 철봉 하자 _007 아주 사소한 시절 _035우리는 계절마다 _075그 얼굴을 마주하고 _111사랑과 결함 _147팜 _189그 개와 혁명 _217분재 _251 도블 _..

베리에이션 루트(마쓰나가 K 산조)

베리에이션 루트제171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베리에이션 루트》가 출간된다. 작가 마쓰나가 K 산조는 2021년 군조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뒤, 두 번째 발표작으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며, 단 두 작품으로 일본 신인 작가에게 주어지는 주요 문학상을 석권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른바 ‘오모로이 순문(재밌는 순문학)’을 표방하는 작가로, 문학성이라는 핵을 간직한 채 심플하고 재밌는 작품을 추구한다. 《베리에이션 루트》는 이런 작가의 방향성과 등산 애호가이자 직장인인저자마쓰나가 K 산조출판은행나무출판일2025.02.24밑줄 긋기 메가 씨는 부서 내에서나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회사의 어느 그룹에도 속하지 않았다. 또한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고 늘 혼자 덤덤히 업무를 처리했다. 퇴근길에 동료와 한 잔하러 가지도..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