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양귀자
- 출판
- 쓰다
- 출판일
- 2019.04.20
강민주씨, 당신 자의식이 너무 비대한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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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절망의 텍스트다.
나는 오늘 이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나는 텍스트 그 자체를 거부하였다. 나는 텍스트 다음에 있었고 모든 인간은 텍스트 이전에 있었다.
(...)
나는 운명을 거부한다. 절망의 텍스트는 그러므로 나의 것이 아니라 당신들의 것이다.
여기까지 말하면 내가 왜 인간 실현을 위한 여성 문제 상담소를 그만두지 않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나는 불행한 여성들의 불행한 이야기를 채집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두 사람은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 애초 길은 없었다는 것.
애초 길은 없었다.
사람들은 그저 살고 있었을 뿐이다. 길은, 그것이 신작로거나 오솔길이거나 간에, 처음부터 사람들에게 길로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모든 삶이 길 위에 있다는 말은 인간은 결국 고독한 순례자라는 뜻에 다름 아니다. 순례자에게 길이 어디 있는가. 오직 고행의 가시밭길만 있을 뿐이다.
과연 그런가. 그는 환상처럼 완벽한 인물인가.
나는 스크랩북을 텊으면서 스스로 되묻는다. 그리고 홀로 대답한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환상이란 절대 존재하지 않음을 내가 보여주고 확인시켜줄 것이다.
꽃도 무게가 잇다. 마흔일곱 송이의 장미는 제법 묵직했다.
희고 말간 것은 싫다. 탱탱하고 반들거리는 피부도 싫다. 한 번도 깨져 보지 않아 굳은살이 배기지 않은 삶은 정상적인 삶의 행로라고 볼 수 없다. 그런 삶은 가짜다. 역사가 없는 것이다.
노랑이 아줌마가 떠나던 날, 아마 나밖에 울어준 사람이 없을 것이오. 다들 자업자득이라고 입을 비죽거렸으니까. 하지만 나는 아주 많이 울었소.
그러나 슬픈 희극도 있는 법이고 우스운 비극도 있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특히나 삶이란 이름의 연극무대에는 어떠한 전제도 의미를 갖지 않고, 때에 따라서는 어떠한 반어도 수용한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삶만큼이나 다양한 가치와 다양한 경험을 생산하는 것은 다시 없다.
그리고 난 날앗다. 분명 날았다. 그리고 지금은? 그렇다면 지금도 나는 날고 있는가? 내 꿈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날개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맑고 투명하고 아른아른 결이 비치는, 거의 신성하게 보이기까지 하는 그 천사의 날개를.
난 그 꿈을 이루었는가? 맑고 투명함을 실현했는가? 나는, 나는, 정말 날아보기나 했는가 · · · · · .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남자들의 눈물은, 남자들의 절망은, 아니, 남자들의 젖은 날개조차 내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모든 젖어있는 것들은, 그것이 여자의 얼굴이건 남자의 얼굴이건 관계없이 나를 슬프게 한다는 것을 나는, 이제, 서서히 깨닫는다. 모든 젖어있는 것에 나는 태연할 수 없다. 젖은 얼굴의 비애 앞에서 나는 꼼짝도 하지 못한다.
희극은 어둡고 음울하게, 그리고 비극은 맑고 산뜻하게.
하지만 이 정적이 수상하다. 진실로 목이 아프고, 눈앞이 점점 흐려진다. 이것은 연극일까, 삶일까. 왜 이리도 숨을 쉬기가 힘이 들까.
지금,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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