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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리에이션 루트(마쓰나가 K 산조)

sole-ly 2025. 5. 27.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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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리에이션 루트
제171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베리에이션 루트》가 출간된다. 작가 마쓰나가 K 산조는 2021년 군조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뒤, 두 번째 발표작으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며, 단 두 작품으로 일본 신인 작가에게 주어지는 주요 문학상을 석권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른바 ‘오모로이 순문(재밌는 순문학)’을 표방하는 작가로, 문학성이라는 핵을 간직한 채 심플하고 재밌는 작품을 추구한다. 《베리에이션 루트》는 이런 작가의 방향성과 등산 애호가이자 직장인인
저자
마쓰나가 K 산조
출판
은행나무
출판일
2025.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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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가 씨는 부서 내에서나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회사의 어느 그룹에도 속하지 않았다. 또한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고 늘 혼자 덤덤히 업무를 처리했다. 퇴근길에 동료와 한 잔하러 가지도, 점심시간에 누군가와 밥을 먹으러 가지도 않았으며, 사무실에 있을 때는 자리에 혼자 않아 집에서 가져온 커다란 주먹밥이나 컵라면을 먹었다.

 

 "아아, 이거." 메가 씨는 한쪽 발을 들었다 내려놓더니 추워질 때까지는 왜 등산화가 아니라 '이것'을 신는지 설명했다. 바위밭을 걸을 때는 바닥이 두꺼운 등산화보다 바위 사이에 발을 잘 디딜 수 있어서 편리하고 '아무튼 가볍다'. 버선 신을 신고 흙이나 낙엽위를 걸으면 단순히 '기분이 좋아서'이기도 하다. 

 

 베리에이션 루트. 베리 루트라는 표현도 쓴다고 한다. 평범한 등산로가 아닌 길, 요컨대 파선루트라 불리는 고난도의 숙련자용 루트나 폐지된 길을 나아가는 것을 가리킨다.

 

 "······ 하지만 사실 산에 길 같은 건 없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그렇게 해서 루트 탐색, 물론 그런 말도 없었겠지만, 산을 누비며 계곡이나 능선을 따라 지나갈 수 있을 만한 곳을 찾아냈죠. 그러니 어떤 의미에서는 베리에이션 루트에 도전하는 게 산행의 근본에 제일 가까울지도 모르겠네요. 보통의 등산은 어떤 의미에서 잘 정비된 길이 있는 대로 편안히 걸어가는 거니까요.

 

 원도급 공사를 그만두고 하도급 공사에 주력하면 이익률은 낮아지지만 수주는 안정된다. 숫자가 예상되면 경영진으로서는 회사를 운영하기 쉬우리라. 

 

 이제 예전 같은 신선함은 없었다. 멈춰 서서 잠깐 바라보다가 물통의 물로 목을 축이고 다시 올라갔다. 

 아무리 걸어도 마음은 상쾌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온몸을 감쌀 듯 솟아오른 불안감이 등을 무겁게 짓누르고 다리에 엉겨 붙었다. 불안의 점도가 점차 진해져서 나는 결국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문득 눈을 돌리자, 길옆의 나무숲은 어슴푸레하고 조용해서 마음이 편해졌다. 숲 안쪽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어스름 속의 나무와 풀은 숨죽인 것처럼 고요했다. 옅은 잿빛 수목, 빨간색과 황갈색 낙엽, 땅을 기는 나무뿌리, 시커먼 부엽토, 그것들은 떠받치는 지표면에 아롱진 햇빛이 흔들렸다. 손을 뻗어 소귀나무의 거무스름한 가지를 치우고 반발짝 들어가보았다. 잠시 있으니 한 덩어리로 보였던 나무들이 신기하게도 성글어 보였다. 몸을 비틀거나 웅크리면 나무들 사이로 못 지나갈 것도 없을 듯했다. 하지만 저 안쪽은 어떨까. 메가 씨는, 그 사람은 늘 이런 곳만 지나다니는 걸까.

 

 지붕 위, 햇빛이 하얗게 반사되는 곡면 끝에서 어른거리는 그 모습을 나는 철제 난간에 둘러싸인 안전 통로에서 바라보았다. 가끔 메가 씨의 움직임에 따라 발치의 고정 줄이 지붕에 쓸리며 움직였다. 메가 씨는 곡예사처럼 지붕을 걸어 다니며 마치 혼자 있는 것처럼 담담히 30분 넘게 조사를 진행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작업복이 펄럭였고, 바닷새가 바로 옆을 날아갔다.

 

 이건 어떻게 넘어가야 할지 걱정하며 쪼그려 앉은 자세로 올려다보고 있으니, 메가 씨는 물이 떨어지는데도 아랑곳없이 폭포의 바위에 달라붙어 간단하게 올라갔다. 나도 젖지 않기를 포기하고서 메가 씨가 짚은 곳을 똑같이 짚고 올라가자 의외로 손쉽게 폭포를 넘을 수 있었다. 

 

"하하하. 하타 군, 괜찮아?" 메가 씨는 이를 내보이며 웃었다. "베리는 길이 맞느냐 틀리냐의 문제가 아니야. 갈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지. 갈 수 있으면 길인 거야."

 

 메가 씨는 산책이라도 하듯 태평하게 말하며 나아갔다.

 겨울은 좋은 계절인가. 그런데 애당초 이런 산행의 뭐가 재미있는 걸까. 들러붙고 얽혀드는 풀을 치우려 애쓰는 동안 나는 서서히 기분이 침울해졌다. 확실히 작은 폭포들이 이어지는 그 계곡은 좋았다. (...) 하지만 메가 씨 말에 따르면 거기는 인기 루트라고 한다. 그야 그렇겠지. 다들 좋다고 생각하니까 인기를 끄는 것이다. 거기는 좋았다. 아니, 거기라서 좋았다. 그럼 지금 나아가고 있는 여기, 여기는 뭘까. 이 앞에 뭐가 있을까. 

 

 "그런데 하타 군, 그건 진짜였지? 그건 정말 무서웠어."

 무슨 소리인지 바로는 알아듣지 못했다. 진짜. 아까 낙엽쌓인 경사면을 고생 끝에 빠져나와서 바위를 붙잡고 쉬고 있을 때 바위 위에서 메가 씨가 나에게 한 말이었다. 

 "그건 진짜였잖아? 진정한 위기는 그런 거지."

 "그때는 정말 무서웠습니다."

 "회사가 어떻게 되느냐느니 마느냐느니, 그런 공포나 불안감은 스스로 만들어내는 거야. 그게 증폭되어 전염되는 거고. 지금 회사 사람들 모두 좀 이상해졌잖아. 하지만 그건 예측이나 이미지랄까. 불안감의 '감'에 해당해. 진짜가 아니야. 허상이지. 그러니까 실제로 하는 수밖에 없어."

 

나는 혼자 산에 오르고 싶었다. 그리고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직접 지도에 그은 루트를 따라 베리를 시도해보고 싶었다. 

 

 산꼭대기를 목표로 할 필요도 없었다. 산행 기록을 앱에 올리는 것도 그만뒀다. 베리를 비판하는 사람이나 앱에 연결된 산악회 동료 때문이기도 했지만, 더 이상 산행 기록을 남과 공유할 마음이나 댓글에 대한 기대감이 생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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