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정보라
- 출판
- 래빗홀
- 출판일
- 2025.01.15
차례
영생불사연구소(영생해도 일은 해야하는구나)
너의 유토피아(너의 유토피아는..? 314야 그게 대체 먼 말이니)
여행의 끝(사귈래 죽을래(먹는다))
아주 보통의 결혼(내 부인이 외계인?)
One More Kiss, Dear(똑똑한 엘레베이터의 사랑 얘기)
그녀를 만나다(그, 그녀, 당신, 우리)
Maria, Gratia Plena
씨앗
* 류드밀라 페트루솁스카야
* 미겔 데 우나무노《인생의 비극적 의미》
밑줄 긋기
(너의 유토피아는)
일방적으로 침입하는 통신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며 나는 달렸다. 나는 다른 기계의 일부가 되고 싶지 않다. 나는 충전하기 위해서, 통신하기 위해서 생산되지 않았다. 나는 느리고 약하고 지적인 존재를 내 안에 태우고 멀거나 가까운 거리를 빠르고 자유롭게 이동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나는 이동하는 존재이다.
ㄴ 소설 속 존재들은 다 무언가를 상실한다. 기계마저도 인격체처럼 감정을 갖는(혹은 그런 것처럼 보이는) 소설 속에서 화자는 편하고 효율적인 제안보다는 끊임없이 소유주를 떠올리고, 역시 기계지만 인간을 상기시키는 314를 태우고 자신이 생각하는 존재의의를 따른다.
나는 나의 소유주였던 인간의 얼굴을 떠올렸다. 마지막으로 나를 타고 작은 회색 건물로 향하던 때에 뒷자석에 누워있던 모습을 생각했다. 그리고 뒷좌석의 난방을 켰다.
ㄴ 그리움으로 인해 전력낭비를 마다하지 않는 붕붕이..
(여행의 끝)
그렇게 나와 녀석은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우주선 구석에 나란히 앉아서 서로 알아듣지 못할 말을 늘어놓으면서도 또 그 알아듣지 못할 말을 무조건적으로, 무비판적으로 들어주었다. 사실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법이다.
"희망이 없어······. 전혀."
녀석은 다시 조금 생각했다. 그리고 불쑥 말했다.
"생각건대, 희망이란 본시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
녀석은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 오래된 중국인 작가의 소설이, 주인공이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가서 절망과 좌절만 겪게 되는 이야기라는 것을 나는 굳이 설명해주지 않았다.
(One More Kiss, Dear)
명령자의 의도대로 반응하는 것은 언제나 가능하다. 의도를 올바르게 전달받기만 한다면 말이다.
인간이 의사소통을 목적으로 나에게 물리적 접촉을 시도했다. 벽에 기대어 서기 위해서, 혹은 장난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의견을 나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나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처음이었다.
이 건물에서 운행하기 시작한 이후로 ······ 아니, 내가 제작된 이후로
― 기계와 사물에 관한 질문은 대답할 수 있습니다. 동물과 식물, 자연 현상에 관한 질문에도 90퍼센트 이상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유한함과 죽음에 대한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습니다.
― 어째서입니까?
내가 다시 물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물의 둥지가 대답했다.
― 인간 스스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녀를 만나다)
"우리는 절대 잊지 않습니다."
나도 절대 잊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어떤 것은 잊게 되었다. 내가 잃어버린 동지들의 모습이, 마음에 불로 새겨진 줄 알았던 그 소중한 이름들이 세월 속에 희미하게 바래다가 사라졌다. 절대 잊지 않는 건 그 순간순간의 감정이었다. 기억도 논리도 이성도 인간의 모든 지적 활동이 다 사라져도 마지막까지 남는 것이 감정이다. 그 분노와 공포와 충격과 슬픔과 원한과 거대한 상실감만은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건 내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저는 군인이고, 엄마이고, 아내이고, 음악가입니다. 우리는 당연히 이 모든 걸 다 가질 수 있어야 했고, 이제는 다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더 행복하게 살고, 행복하고 건강하게 사는 모습을 여러 사람 앞에 당당하게 내보이려고 합니다."
(Maria, Gratia Plena)
나는 그녀의 장례식에 갈 수 없었다. 그녀와 같은 사람을 위해서 일반적인 장례식이 과연 치러졌는지조차 알 수 없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 님."
나는 중얼거렸다. 그녀가 말했던 '은혜로우신 마리아 님'으로 검색해서 찾아낸 기도문이었다.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그녀가 외울 수 없었던 뒷부분을 나는 그녀를 위해 읽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 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초판 작가의 말)
그러니까 상실하면 애도해야 하고, 상실을 기억하고 애도하기 위해서는 생존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기억하지 않는다면 상실된 사람들을 누가 기억해줄 것인가. 그리고 행동으로 애도하지 않는다면 나는 이런 상실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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