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모래
- 출판
- 고블
- 출판일
- 2025.02.14
랍비들의 가르침에 전해 내려온 이야기다.
유대인 네 사람이 과수원에 들어갔는데, 그들의 이름은 벤 아자이, 벤 조마, 아헤르, 그리고 랍비 아키바였다.
랍비 아키바가 그들에게 말했다.
“수정 같이 맑은 대리석에 이르렀을 때, ‘물이다! 물이다!’라고 말하지 마시오.
왜냐하면 거짓말을 하는 자는 나(신)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라는 말씀이 있기 때문이오.”
그런데 벤 아자이가 그것을 바라보고 죽었다.
이에 대해 경전은 “성도의 죽는 것을 주께서 귀중히 보시도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벤 조마도 그것을 바라보고 (정신)병에 걸렸다.
이에 대해 경전은 “그대가 꿀을 발견했는가? 그것을 충분한 양만큼 먹되 지나치게 먹어 토하지 않게 하라.“고 말했다.
한편 아헤르는 그 동안 간직했던 믿음의 밑동을 잘라 버려 이교도가 되었다.
그러나 랍비 아키바는 평화로운 마음으로 그곳을 떠났다. - 탈무드, 신의 역사에서 재인용-
긴 담벼락을 따라 당신은 달리고 있다. 담벼락 안에서는 아마 고문이 행해지고 있고, 앞마당에는 박꽃이 피어 있다. 당신은 빈털털이다. 당신에게는 돌아갈 집이 없다.
그런 꿈을 꾸지 않으려면 어떤 현실이 필요할까요? - 이십억 광년의 고독-
두 이야기에서 시작되는 소설. 각 장의 제목이 위 구절들의 일부를 따서 전개된다.
고등학교 친구인 기철, 명우, 필립, 여정의 이야기.
이들은 가상의 사이비 종교 ‘가리교’의 수첩을 접하고 꿈과 신비한 능력을 얻으며, 수첩을 갈구하게 된다.
수첩을 얻기 위한 갈등이 주 내용인데 이야기가 진짜 꿈같아서 읽어도 이해가 갈 듯 말 듯 하다.
밑줄 긋기
‘어느 날 갑자기 신이 된다면, 아니, 자신이 신인 것을 깨닫는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네이버 지식인에 질문을 올려보고 싶었다.
물론 여정은 그 답을 알고 있었다.
별달리 할 게 없다.
여정은 그래서 계속 버스를 타고 쏘다녔다.
—
밖에서 개들이 또 짓는다. 밖에 나가서 개들을 달래줘야 한다. 개들에게 꿈꾸는 법을 가르치는 게 재미난다. 개들은 내가 가고 나면 뿔뿔이 흩어져서 먹잇감이 될지 모른다. 그래도 저놈들이 다른 꿈이라도 꿀 수 있다면, 저 서러운 생들이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을 수 있지 않겠나.
”너 언제부터 이런 데에 관심이 있었어?“
”전에는 몰랐지. 하지만 이제는 알게 됐어. 알게 되니까 모른 척할 수가 없어.“
“뭘?”
“남들의 고통.”
나는 이 게임이 치유 효과가 있다고 봐. 나는 좀 더 자유로워졌다고 느끼거든. 이 현실이라는 게 전부는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고 해야 하나? 그건 뭐라고 말로 할 수 없는 체험이었어. 종교보다 더 종교적이고, 더 근본적인 체험이었다니까. 아직도 이 종교가 맞네, 저 종교가 맞네 어쩌고 하면서 서로 죽이는 인간들에게 반신전쟁을 보내줘 봐. 게임을 하느라 서로 죽일 일도 없어질 걸.
광기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은 이상한 확신이 여정의 얼굴에 있었다. 여정은 이상해졌다. 그래, 수첩은 사람을 이상하게 만들지. 필립은 잠시 하늘을 쳐다봤다. 나도 이상했지.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나는 이상한 애였어. 나는 외로움도 두려움도 모르는 애였어. 수첩을 잃고 필립은 멀쩡하게 살았다. 하나를 잃고 불행해도 이것은 멀쩡한 불행이다. 이제 필립은 이것이 싫었다. 멀쩡하고 불행한 삶보다는, 이상한 삶이 더 나을 것이다. 필립은 생각했다.
”어쨌든 너 좋아 보여. 행복해 보인다. 옛날에는 늘 그렇게 우울해 보이더니.“
명우는 깜짝 놀란 얼굴이 되었다. 말없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명우는 필립에게 다시 물었다.
”이 모든 세계가 다 꿈이라면 어떡할 거야? 이게 꿈이 아니라는 걸 너는 어떻게 알 수 있어?“
”모르지. 그건 알 수 없는 거야. 정말 모를 일이야. 지구가 평평한지, 이 모두가 게임인지도 모르고 말이야. 알 수 없는 일이야. 하지만 알 수 있는 척하고 살아야 해. 알지?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해. 아니면 미치고 말 테니까. 주먹을 꼭 쥐고, 최대한 제정신으로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거야.“
필립은 줄줄 말했다. 말하고 있는데, 가슴이 너무 아팠다.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꼭 쥐고 있었다.
“하나가 죽는다면, 그런 건 차라리 모르고 영원히 하나가 살아 있는 꿈을 꾸는 게 나을 것 같지?”
“영원히? 하나가 죽었는데, 그 일 자체를 잊고 나는 하나가 살아 있는 꿈을 꾼다고?”
“그래. 하나는 죽었어도 너는 하나가 살아 있는 꿈을 꾸는 거지. 어차피 인생은 한바탕 꿈이잖아.”
“아니. 그건 싫어. 인생이 꿈이라고 해도, 나는 진짜 하나를 알고 싶어. 나는 하나가 나와 다른 꿈을 꾼다면 하나가 꾸는 바로 그 꿈을 꾸고 싶어. 하나가 경험한 것과 다른 꿈을 꾸고 싶지 않아.”
“핵심은 이거야. 네가 꿈을 꾸는 동안, 너는 네가 꿈을 꾸는 걸 몰라. 그냥 하나가 살아 있다고 믿고 행복하게 살면 된단 말이야. 어차피 지나간 일들 기억은 희미하잖아? 먼 미래에 돌아보면, 기억은 선명하지 않아. 어떤 일은 그런 일이 있었나 싶은 것처럼 아련해지지. 꼭 가장 추운 겨울날, 가장 더웠던 여름날을 떠올리면 그 더위가 믿기지 않는 것처럼. 그러니까, 그냥 제일 행복한 꿈을 골라서 그걸 믿고 살면 좋잖아.”
그러나 필립은 술잔을 붙잡고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나는 진짜 하나가 있는 편이 좋아.”
“하나가 죽었어도?”
명우가 필립을 쳐다보았다. 명우의 눈빛은 딱하도록 슬퍼 보였다.
“응”
“자네 할머니도, 주지 스님도, 나도 가리교는 아니었어. 우리는 그저 진리를 찾아 헤맸고, 잠깐이나마 가리교에 그게 있나 했지. 그게 전부야. 할머니를 좀 더 이해하게 되지는 않았나?”
“스님은 저희 할머니를 이해하시나요? 왜 손녀도 딸도 내버려두고, 그런 음습한 지하실에서 불도 안 들어오게 하고 지내다 돌아가셨는지?”
“아니, 이해하지 못하네.”
“저도 몰라요. 그냥 이제는 알 수 없을 거라는 걸 알겠어요. 그리고 몰라도 모르는 채로 괜찮다는 것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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