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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사 워크숍

산 사람은 살아야지.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며 지난 1년간 어느 때보다 오 대리를 귀찮게 했다. 목욕탕에 같이 가서 때를 밀어 달라고, 삼각지역 앞에서 파는 붕어빵을 신림동까지 사다 달라고, 오장동에 가서 회냉면을 먹자고, 오 대리가 집에서 나가려 하지 않자 자꾸만 그렇게 성가시게 굴었다. 그리고 말했다. 산 사람은 산다. 오 대리는 그 말이 싫었다. 징그럽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할머니, 산 사람은 살기도 하지만 죽기도 해. 죽은 사람이 죽는 거 봤어? 산 사람이 죽기도 하는 거라고. 그때는 산 사람이 살아서 죽는 걸 돕는 일을 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럼, 형편없지. 근데 세상도 형편없어. 아주 엉망이야. 똥 같아. 그니까 네 맘대로 더 형편없이 굴어도 돼." 잠시나마 멈..

카테고리 없음 2025.09.08

신경 좀 꺼줄래(케빈 윌슨)

"애들 몸이, 의사도 밝혀내지 못한 이유로 아주 뜨거워질 수가 있어. 온도가 아주 위험할 정도로 올라가.""알았어." 내가 말했다. 이게 전부일 리가 없었지만 매디슨이 계속 애기하게 만들려고 그냥 대꾸했다. "불이 붙어." 매디슨이 마침내 말했다. "애들이ㅡ당연히 그런 일이 극히 드물긴 한데ㅡ 몸에서 불이 나." "농담이지?" 내가 물었다. "아니야! 정말로 농담 아니야, 릴리언. 내가 왜 이런 걸 가지고 농담을 하겠어?" "여기에서 사는 거예요?" 베시가 물었는데 그렇다는 답을 간절히 듣고 싶은 듯한 목소리였다. "응." 내가 말했다. "릴리언이 우리랑 같이 지낼 거고요?" 베시가 물었다. "응. 그럴 거야." 내가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집에 온 거예요?" 롤런드는 대체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

오렌지와 빵칼(청예)

밑줄 긋기 이렇게도 말할 수 있겠다. 은주는 사람을 사랑했다. 그러므로 그녀는 사람을 미워했다. 나 또한 그런 은주를 정말 좋아했다. 그래서 은주를 증오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실망시킬 때는 주저하지 말고 숨을 쉬자. 타인을 실망시켰다는 절망이 목을 조여 오지 못하도록, 들이 쉬고 내쉬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했다. 내가 또 네 마음의 허리를 꺾었구나, 이 세상이 오와 열에 맞추어 잘 굴러갈 수 있게끔 헌신하는 사람을 내가 불편하게 만들었다. 아무리 생각 해도 이 모든 잘못에 이름표를 붙여줘야 한다면, 오영이라고 적어야만 했다. 오늘의 나는 지난 기념일에 수원과 맞춘 커플 속옷을 입었다. 은주가 선물해 준 노란 셔츠도 입었다. 나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로 겉껍질을 만들었으니, 알맹이만큼은 나의 선택으로 바꾸..

혼모노(성해나)

밑줄 긋기이웃들은 평창동 시택을 '연리목집'이라 불렸다.남편 여어나던 해에 시부는 마당에 음나부와 느티나무 를 나란히 심었다. 상생하기 어렵다는 두 나무는 뿌리부터 서로 끌어안는 형태로 조금씩 업허며 자랐고 시댁은 이후 연리목이 자라는 집, 사랑이 가득한 집이라 불렸다 이웃들은 모르겠지만 시댁 마당의 그 나무는 실상 시부가 인위적으로 매만진 연리였다. 치목 두그루를 한폭 너비로 심은 뒤 줄기 부분을 긁어내고 비닐 끈으로 단단히 묶어 서로 얽히게 만든 연리. 가만 보면 저 양반이나 너나 꼭 닮았어. 뭐가요?사랑에 갈급해서 제가 받지 못한 걸 죄 자식에게 쥐여 주려고 하잖니.

카테고리 없음 2025.08.13

설자은, 불꽃을 쫓다(정세랑)

밑줄 긋기 자은이 어릴 때에도 비슷한 말들을 외치며 헤매는 자들이 있었고, 천세가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듯 했다. 과연 존재한 적 있을지 의심스러운, 무구했던 지난날로 돌아가자며 눈앞의 모든 것을 오손이라 명하고 내치려는 자들이었다. 그 말들은 단지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비롯되는가? 그럴 리 없다. 그보다는 허공을 휘감은 염오의 기운을 그대로 받아내 외치는 것에 가까울 것이었다. 광증이 없는 이들도 입을 다물 줄 알 뿐, 흉중은 흡사할지 몰랐다. "어찌되었든 날을 더해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입버릇 같은 혼잣말을 거듭했다. 누구나 더이상 새날이 주어지지 않을 때까지 날을 더해가며 산다. 그뿐이다. 야단을 떨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고 경망스러운 자들이나 달리 굴 것이다. 일어난 일들, 일으킨 일들 모조리..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정세랑)

티스토리... 글감 기능을 없앴어?....^^ 전에 추천 받기도 했고, 정세랑 작가가 장르소설에 시리즈물을 냈다길래 궁금증에 읽기 시작했다. 게다가 시대물이야. 어려운 길을 가는구나..라고 생각함.기존작들에 비해 엄청 취향은 아니지만 정말 정세랑 작가스러운 책인 듯.하.. 10권 넘게 작업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빨리 완결내줬음 좋겠음. 결말이 궁금해.완결을 빨리 내고 외전을 10권 넘게 내주시면 안되나요(?) 밑줄 긋기 "여인의 몸으로 그 멀리 갔다가 들켜서 죽어버리란 말이야?" "사람이 죽고 사는 건 여기 있어도, 아무리 한 자리에 머물러도 마찬가지다. 우린 이제 그걸 알지 않니?" "처음엔, 호은 오빠가 미쳤다고 생각했지 뭐야." 도은이 자은의 옷매무새를 고쳐주며 털어놓았다. "이런 위험한 일을 ..

너의 유토피아(정보라)

너의 유토피아부커상과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로 선정되었던 정보라의 두 번째 소설집 《너의 유토피아》가 2025년 1월 래빗홀에서 다시 출간되었다. 2021년 출간된 《그녀를 만나다》의 개정판인 이 책은 폐허의 오늘에서 더 나은 세계를 향해 가는 꾸준한 노력을 담아낸 〈너의 유토피아〉를 표제작으로 삼고, 새로운 순서와 장정, 더 정교히 다듬어진 문장으로 정비되어 독자를 만날 채비를 마쳤다. 안톤 허의 번역으로 지난해 영문판 Your Utopia가 미국, 영국, 인도, 호주저자정보라출판래빗홀출판일2025.01.15 차례영생불사연구소(영생해도 일은 해야하는구나)너의 유토피아(너의 유토피아는..? 314야 그게 대체 먼 말이니)여행의 끝(사귈래 죽을래(먹는다))아주 보통의 결혼(내 부인이 외계인?)One Mor..

어린이는 멀리 간다(김지은)

어린이는 멀리 간다김소영의 ‘어린이라는 세계’가 생각나는 책. 사실 후속작인 줄 알았다. 아동 청소년 문학 평론가의 책이었음.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으면서는 내 주변을 스쳐 지나간 어린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면 이 책을 읽으면서는 어린 날의 내가 떠올랐다. 책상 아래에 쭈구려 앉아 동화책을 읽던 나의 모습, 차 타고 멀리 떠나면서도 꼭 한 권을 챙겨 보던 나의 모습.. 동화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책밑줄 긋기어린이는 귀하다. 오늘로부터 가장 멀리 떠날 사람이기 때문에 매 순간 소중하다. 어린이는 우리 곁을 떠나 늘 멀리 간다. 용감하게 떠나는 것이 어린이의 일이라면 정성껏 돌보고 사랑을 주어서 잘 보내는 것은 어른의 일이다.어려서부터 의견을 독립적으로 인정받고 그 의견을 표현해서 현실을 바꾸어 보는 경험은 소..

드리머(모래)

드리머오랜 시간 알고 지내던 네 인물이 옛 사이비 종교와 관련된 수첩을 얻으면서 겪게 되는 기나긴 일대기를 다룬 오컬트 스릴러 장편소설 『드리머』가 출간되었다. 게임 회사 CEO이자 가장 성공한 사업가로 추앙받는 ‘명우’, 사고로 딸의 잃은 슬픔에 잠긴 ‘필립’, 냄새를 맡는 것마다 온 세상의 고통이 느껴지는 ‘여정’, 노숙자 쉼터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게 취미이지만 동시에 망나니 기질로 넘쳐나는 ‘기철’. 이 네 사람은 현재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지만저자모래출판고블출판일2025.02.14랍비들의 가르침에 전해 내려온 이야기다.유대인 네 사람이 과수원에 들어갔는데, 그들의 이름은 벤 아자이, 벤 조마, 아헤르, 그리고 랍비 아키바였다.랍비 아키바가 그들에게 말했다.“수정 같이 맑은 대리석에 이르렀을..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양귀자)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1992년 초판이 나오자마자 페미니즘 논란과 함께 화제의 중심에 오른 양귀자의 장편소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저자가 펴낸 두 번째 장편소설로, 젊은 여성이 인기 남자배우를 납치해 감금하고 조종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성 억압의 현실을 고스란히 뒤집어 학대당하고 조련당하는 남성을 보여주는, 앞선 페미니즘 소설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공격적인 방법으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의 불평등 문제를 제기하면서 처음부터 소설의 흡인력을 최대치로저자양귀자출판쓰다출판일2019.04.20 강민주씨, 당신 자의식이 너무 비대한 것 아닙니까?! 밑줄 긋기 삶이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절망의 텍스트다. 나는 오늘 이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나는 텍스트 그 자체를 거부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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