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하기는커녕 일면식도 없던 외국인 둘이서 처음 만난 날 곧바로 혼인 신고서에 서명을 했고 사흘 후 합동결혼 식을 통해 가정을 이뤘다. 나는 자라면서 그런 가정에서 태어난 것이 너무 부자연스럽다고 느꼈다.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존재 같았다. 엄마와 아빠의 결혼이 개인적으로도 이상한 선택이지만, 무엇보다 사회적으로 타당하지 않다고 여겼다. 하지만 내 존재 자체를 부정하게 만드는 생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때마다 언제나 나를 붙드는 것이 있었다. 바로 내 동생들.
내가 동생들의 존재를 부정할 수 있을까? 예쁘고 반짝이는 동생들을 보면서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이유 같은 것을 떠올려본 적이 없다. 누구에게서 어떠한 방식으로 태어났든, 인간은 누구나 사랑받고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그러고 나면 덩달아 나의 존재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동생들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생각하는 데 훨씬 더 오래 걸렸거나, 그전에 멈춰버렸을지도 모른다.
중학교 때 "너 혹시 혼혈이야?"라는 질문을 몇 번 들은 적은 있다. 대외 활동에서 만난 다른 학교 아이가 던진 말이 너무 생소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누가 누구인지 편히 아는 작은 마을 안에서만 지냈기 때문에 마을에서나 학교에서나 우리 엄마가 외국 사람인 것을 자연스레 알고 있었다. 나의 배경에 대해 먼저 나서서 설명할 필요가 없었고 궁금해하는 사람도 드물었다. 생활 반경이 넓어지면서 내가 '일반적인 가정'의 아이들에 비해 눈에 된다는 걸, 호기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점차 알게 되었다.
혼혈이란 무엇인가? 사전에는 "서로 인종이 다른 혈통이 섞임. 또는 그 혈통", "혈통이 다른 종족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이라고 나와 있다. 이렇게 보니 서로 다른 인종 사이에서 태어난 나는 혼혈이 맞다. 하지만 비슷한 말로 잡혈, 튀기가 나왔고, 반대말로는 순혈이 나왔다. 모든 단어에는 맥락이 있다. 한국인 사이에서 난 자식은 깨끗하고 순수한 혈통이며, 그 반대는 마구 뒤섞여 어지럽혀진 혈통이 된다. 누군가를 혼혈이라는 단어로 일컫는 순간 그렇지 않은 누군가는 자동으로 순혈이 된다. 순혈이라니, 한민족이라는 한국의 민족주의, 나아가 국수주의가 확 느껴진다.
새 집에 산 지도 5년이 넘었다. 동생들은 새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되어, 깨끗한 집 안에 자기 방을 가진 채로 자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도 내 꿈에 나오는 우리 집은 언제나 옛집이다. 버리고 싶고 벗어나고 싶던 것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그 집에 나의 삶이 녹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지저분하고 낡았어도 나는 그곳에서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고, 숙제를 하고, 티브이를 보고, 잠을 자고, 꿈을 꾸었다.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공간이다. 옛날 집에서 살았기에 벌레에 대한 담력을 기를 수 있었고, 마루에 앉아 선풍기 바람을 쐬며 수박을 먹는 기쁨을 알 수 있었다. 마당 돌담과 능소화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고, 평상에 누워 밤하늘의 별자리를 공부할 수 있었다. 옛집에서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다. 옛집은 나의 일부다.
한국에 온 엄마가 고모에게 처음 들은 말은 "clean room"이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엄마에게 가정이라는 이름의, 급여를 주지 않는 일터가 생겼다. 엄마는 벽이 기울고 천장이 울퉁불퉁한 집에서 청소하고 밥하고 빨래하고 아이를 키웠다. 농사도 병행하면서 말이다.
4개 국어를 한다는 건 엄청난 스펙이지만 그게 이주여성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동남아 출신 이주여성의 모국어는 대부분 비주류에 속한다. 나도 타갈로그어가 비주류 언어이기에 굳이 배울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외갓집에 자주 가는 것도 아니고 영어로도 충분히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게으른 핑계다.
어떤 가정에서는 이주여성의 모국어 사용을 제지한다. 남편과 시부모가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이들에게 모국어를 가르치는 것은 고사하고 집 안에서 모국어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이렇듯 이주배경청년의 바이링구얼은 차별적 이유로도 저지된다.
내가 보기에는 필리핀에 두고 온 엄마의 고향이 더 살기 좋은 곳 같다. 엄마의 고향에는 어르신들이 있고 아직 젊은이도 많고 아기도 계속 태어난다. 집 가까이에 초등학교가 있고, 동네 군데군데 마련된 농구 코트에서는 청소년들이 농구를 하고, 간단한 식재료나 군것질거리를 살 만한 작은 가게도 한 블록마다 있다. 동네 슈퍼를 가려면 2.5킬로미터를 걸어 나가야 하는 우리 마을과는 전혀 다르다. 엄마는 이주 결혼 후 삶의 질이 크게 좋아지지 않았음에도 불평하지 않았다. 한국과 필리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엄마는 가족들에게 존중받아 마땅하다. 말도 안 되는 비난을 받을 것이 아니라.
필리핀에는 이제 엄마가 부양할 사람도, 신경 써야 할 사람도 없다. 돌아가서 특별히 하고 싶은 건 없다고 한다. 그저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며 집에서 평화롭고 조용히 살기를 원한다고. 그렇다면 지금 살고 있는 한국 집은 무엇이냐고 엄마에게 물었더니 "상처를 받은 공간"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 나라를 선택한 건 자신이고, 그래서 당신은 그 선택에 책임을 다했고 후회는 없다고 했다.
고향집에서 살면서도 이렇게 평온한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집이 있어도 돌아가고 싶지 않고, 그렇다고 집의 상황을 바꿀 힘이 나에게는 없다는 것이 괴로웠다.
다문화가정 자녀 전형은 다른 전형만큼 필요하지만, 나와 써니가 그랬던 것처럼 이 전형이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당사자들이 있다. 다문화가정 자녀의 사회적 약자성이 공공적으로 거론되지 않아서 당사자마저 자신을 약자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긴 주기를 두고 만나며 그날의 사건에 대해, 그보다 더 오래된 폭력의 맥락에 대해, 그리고 가해자를 지목할 수 없어 폭력으로 명명하기 어려운 기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예나는 그런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처음이라고 했다. 나 역시 다른 이의 깊은 곳에 있는 이야기를 듣는 경험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단순히 듣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우리는 공동 작업자였다. 예나가 기억을 꺼내놓으면 우리는 함께 그것을 서사화하고 정치의 언어에 가닿고자 했다. 그것은 우리가 기억을 다루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었다. 그건 결국 계속해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기도 했다.
'sole-chiving >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신경 좀 꺼줄래(케빈 윌슨) (0) | 2025.09.04 |
|---|---|
| 오렌지와 빵칼(청예) (5) | 2025.08.13 |
| 설자은, 불꽃을 쫓다(정세랑) (1) | 2025.07.22 |
|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정세랑) (2) | 2025.07.22 |
| 너의 유토피아(정보라) (0) | 2025.07.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