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사전지식 없이(대체로 그렇지만) 제목에 이끌려 집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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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뿐 아니라 주요 선진국들 모두 지금 '대중의 기분'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중의 기분은 사납고 변덕스럽고 깊이 생각하지 않으며 책임지지도 반성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루소가 말한 일반의지 따위가 결코 아니다. 대중의 기분은 전체 시민을 대표하지 않으며, 극단주의자들에게 휘둘리기 쉽고, 잘 조직된 소수에게 왜곡당하기도 쉽다.
제가 의심하지 않는 몇 가지 삶의 원칙들이 있는데, 막 용기를 주는 내용은 아니지만 그래도 원칙은 원칙이어서 소박한 궁리의 기반은 되어줍니다. 제 원칙들은 개인은 존엄하다, 세상은 복잡하다, 사실은 믿음보다 중요하다 등입니다.
광장의 섬뜩한 구호들, 포털 사이트의 적개심어린 댓글에서 나는 가끔 진한 외로움을 읽는다. 자기 존재의 의미를 의심하는 이들이 무리에, 거대서사에 소속되고 싶은 마음을 그런 식으로 드러내는 것 아닌가 싶어서다. 외로움을 넘어선 그 공허함이 가엾다.
사회적 성공은 자기 계발 따위로는 도저히 이를 수 없는 먼 목표로 느껴지고, 독하게 해도 안 되고, 성공 은 됐으니 조용히 웰빙이라도 하고 싶은데 그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는 사회. 그런 곳에서 집단적 무력감이 퍼지는 것이 이상한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은 '그러므로 나는 괜찮은 인간이 아니다'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사실 무력감으로 귀결되는 이야기의 결말을 바꾸면 고전적인 영웅서사다. 가진 게 없었고, 시련을 겪었으나, 결말은 창대한. 미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같은 소재로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므로 희망이, 목표가 필요하다. 그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과거가 보잘 것 없고 현재가 힘들수록 더 대단해진다. 그는 실패하더라도 비극적 영웅이 되지, 무력한 존재가 되지는 않는다
압박감과 함께 머리에 떠오른 단어는 수동성이다. 외향적인 사람,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전화는 효과적인 무기가 된다. 내향적이거나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은 메일이나 문자메시지보다 전화로 "아니오"라고 답하는 것을 더 부담스럽게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가 얘기해야 하는 것은 신문 이후의 세상이다. 뉴 미디어는 어떤 사안을 고발하고 확산하 는 데에는 뛰어나지만 사회통합의 기능은 거의 없는 것 같다.
2020년 한국사회의 뉴 노멀 중 하나가 '사람들을 불 편하게 만들면 안 된다'이다.
첫번째 문제는 불편함이라는 신호가 꼭 불공정, 부조리에 대해서만 켜지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의 마음은 자존심이나 콤플렉스를 건드리는 자극에 대해서도 아주 날카롭게 반응한다.
소셜 미디어는 품질 좋은 정보가 널리 확산되는 공간이 아니다. 짧은 단상은 순식간에 멀리 퍼지는 반면, 긴 텍스트는 온전한 모양으로 전파되기 어렵다. 인터넷에서 남의 깊은 논리에 설득되는 일은 거의 없는 반면, 극단적인 감정에 전염되는 현상은 흔하다. 트래픽이 커질수록 집단지성이 아닌 군중심리가 나타난다. 구조 자체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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