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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치기들도 책을 읽을 줄 아네요."
옆에서 맑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칠흑같은 검은 머리에 옛 정복자들인 무어인을 연상케 하는 눈, 전형적인 안달루시아 지방 소녀였다.
"양치기들이 책을 읽지 않는 건 책보다 양들이 더 많은 것을 가르쳐주기 때문이겠죠."
산티아고가 대답했다.
아버지는 축복을 빌어주었다. 소년은 아버지의 눈을 보고 알 수 있었다. 그 역시 세상을 떠돌고 싶어한다는 걸. 물과 음식, 그리고 밤마다 몸을 누일 수 있는 안락한 공간 때문에 가슴속에 묻어버려야 했던, 그러나 수십 년 세월에도 한결같이 남아 있는 그 마음을.
이 세상에는 위대한 진실이 하나 있어. 무언가를 온 마음을 다해 원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거야.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은 곧 우주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때문이지.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는 게 이 땅에서 자네가 맡은 임무라네.
"아무렴. 보물을 찾겠다는 마음도 마찬가지야. 만물의 정기는 사람들의 행복을 먹고 자라지. 때로는 불행과 부러움과 질투를 통해서 자라나기도 하고. 어쨌든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내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부과된 유일한 의무지. 세상 만물은 모두 한가지라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산티아고는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바람의 자유가 부러웠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자신 역시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는 사실을. 떠나지 못하게 그를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자신말고는.
양들, 양털 가게 주인의 딸, 그리고 안달루시아의 평원은 그에게 단지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가는 과정들에 불과했다.
어쨌든 보석들은 노인의 보살핌이 계속될 거라고 말 해주었고, 그의 믿음은 힘을 얻었다. 산티아고는 텅 빈 시장을 다시 한번 바라본 후. 조금 전 느꼈던 절망을 털어냈다. 이곳은 더이상 낯선 곳이 아니었다. 새로운 세계였다.
나는 이미 내게 일어날 일이며 내 앞에 기다리고 있는 일, 그리고 함께 나눌 대화와 기도까지 상상해보았어. 다만 내게 다가올지도 모르는 커다란 절망이 두려워 그냥 꿈으로 간직하고 있기로 한 거지."
그날 상점 주인은 산티아고에게 진열대를 만들어도 좋다고 허락했다.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꿈을
보는 것은 아니었다.
실수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져서는 안 돼.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야말로 이제껏 '위대한 업'을 시도해보려던 내 의지를 꺾었던 주범이지. 이미 십 년 전에 시작할 수 있었을 일을 이제야 시작하게 되었어. 하지만 난 이 일을 위해 이십 년을 기다리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행복해."
"고통 그 자체보다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더 나쁜 거라고 그대의 마음에게 일러주게 어떠한 마음도 자신의 꿈을 찾아나설 때는 결코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것은, 꿈을 찾아가는 매순간이란 신과 영겁의 세월을 만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라고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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