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e-ly 2025. 3. 11.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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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주택
한국어린이도서상, IBBY 어너리스트 수상작가 유은실의 신작 청소년 소설『순례 주택』. 코믹 발랄한 캐릭터 설정과, 순례 주택을 둘러싼 한바탕 대소동은 기발하면서도 유쾌하다. 약간은 막 가는 수림이네 네 식구가 쫄딱 망한 뒤, 돌아가신 외할버지의 옛 여자친구의 빌라‘순례 주택’으로 이사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솔직하지 못한 엄마, 누군가에게 얹혀사는 데 일가견 있는 아빠, 라면은 끓일 줄 모르고 컵라면에 물만 겨우 부을 줄 아는 고등학생 언니
저자
유은실
출판
비룡소
출판일
2023.08.24


초등학생 시절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 이야기’를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삐삐 시리즈를 다 읽고, 산적의 딸 로냐와 같은 다른 책들도 파먹듯 손에 쥐었던 것은 다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 이야기‘ 때문이다. 어느정도냐면 작중 주인공처럼 삐삐 롱스타깅의 풀 네임을 다 외울 정도였다. 그보다 더 어린 시절에는 ’우리 집에 온 마고할미‘가 방 한켠에 놓여 있었다.(같은 작가인 건 지금 알았다.) 도서관 서가를 살피다 보면 ’유은실‘이라는 이름을 꽤 자주 볼 수 있었기에 나는 유은실 작가가 아동문화 작가라고만 생각했다. 순례주택이 출간되고 깜짝 놀라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꼭 읽고 싶었는데 출간된지 한참 지난 이제서야 책을 빌려보았다.

책을 읽으면서 대학생 때 독서모임에서 읽은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가 생각났다. 주인공 그윈플렌은 버려졌지만 떠돌이 약장수 우르수스에게 주워져 양자처럼 키워지는데 발제자가 낸 질문 중 떠돌이 ’우르수스가 그윈플렌을 양육한 환경은 좋은 환경이라고 할 수 없는데 이럴 경우 우르수스를 좋은 양육자라고 할 수 있는지‘였다. 당시의 내 주장은 양육에서 중요한 것은 환경이 아니라 아이를 얼마나 아끼고 지지하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우르수스는 좋은 양육자라는 것이었다.
작중 주인공 ’수림‘은 고급 아파트 원더 그랜디움에서 거주하지만 막상 사랑과 애정을 받고 자란 곳은 수림의 가족이 멸시하는 거북 마을이 아니던가. 아이에게 부모님 이외에 친구같은 어른이 좋은 조언자이자 보호자로서 아이의 성장을 돕는점에서는 같은 작가의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이 떠오르기도 했다.

찾아보니 유은실 작가의 데뷔작이 ‘우리 집에 온 마고할미’라고 한다. 작가의 말에서 저자는 첫 책을 내고 16년의 세월이 흘렀다며 그동안 만난 독자들이 지금쯤 얼마나 자랐을까 상상했다고, 수림은 그들을 떠올리며 만든 인물이라고 말한다. 내가 읽은 유은실 작가의 책이 데뷔작이었으니 그 독자들 중 한 명이 바로 나인 셈이다. 유은실 작가의 데뷔작이 2005년에 출간됐다는데 나는 그때 초등학교에 막 입학할 때였다. 그런 내가 고학년에도, 성인이 돼서도 같은 작가의 책을 읽을 수 있다니 정말 감사한 일이다. 다음에도 다른 책으로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밑줄 긋기


“수림아, 어떤 사람이 어른인지 아니?”
순례 씨가 대답 대신 질문을 했다.
“글쎄.”
막연했다. 순례 씨, 길동 씨 부부, 박사님, 원장님, 2학년 담임쌤…… 주변에 있는 좋은 어른은 금세 꼽을 수 있지만.
“자기 힘으로 살아보려고 애쓰는 사람이야.”
“순례 씨 생각 동의.”
주변에 있는 좋은 어른들은 자기 힘으로 살려고 애쓴다.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

나는 순례 씨와 ‘우리’다. 그러니까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쓰러지지 않을 거다.

1군들은 얼빠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수림아, 그런 세상 사는 법은 어디서 배웠니?”
아빠가 물었다. 나는 ‘거북 마을’이라고 하려다가, 엄마를 한번 쿡 찌르고 싶었다.
“빌라촌에서.”

순례 주택 사람들은 자꾸 꿈같은 얘길 한다. 1군들을 과대평가하고 있었다. 어려운 순간을 스스로의 힘으로 돌파하려고 애쓰는, 본인들과 비슷할 사람일 거라고.

“걱정 마. 내줄 공간이 있어서 다행이야. 감사해.”
순례 씨는 ‘감사’라는 말을 잘 한다. 1군들에게선 거의 들은 적이 없는 말이다. 순례 씨가 좋아하는 유명한 말 —관광객은 요구하고, 순례자는 감사한다—가 떠올랐다. 나도 순례자가 되고 싶다. 순례자가 되지 못하더라도. 내 인생에 관광객은 되고 싶지 않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한숨이 나왔다. 나는 ‘엄마가 준 상처’ 얘길 하는데, 엄마는 ‘자기가 받은 상처’를 얘기했다.

엄마가 삼십 년 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불렀다. 나는 깜짝 놀랐을 때도 “엄마야.“를 외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하부지“나 ”순례 씨“를 부르는 것도 아니다. ”으악“, ”어“, ”앗.“ 정도. 문득, 나도 독립언을 많이 쓰고 살아왔다는 걸 깨달았다. 나쁘지 않다. 독립언을 많이 쓰는 독립적 인간.

순례 씨는 창문 밖에서 내가 일하는 걸 틈틈이 봤다. 알바를 끝내고 402호에 가면 내 손을 샅샅이 훑어봤다. 엄마 아빠는 내 손을 보지 않았다. 엄마는 ”새로운 경험을 하는 건데, 누가 보면 돈이 없어서 알바 하는 줄 알겠다.“고 걱정했다.

”네 엄마 겁나는구나. 그럴 줄 알았어. 오죽 자신이 없으면 아파트에 산다는 걸로 자기를 확인하고 싶었겠어. 자랑할 게 비싼 아파트밖에 없는 인생처럼 초라한 게 있을까.“

나는 사랑스러운 풋노인의 손을 꼭 잡았다.
”순례 씨, 있잖아. 나는 나중에 자식을 낳으면, 꼭 태어난 게 기쁜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
”왜?“
”태어난 게 기쁘니까, 사람으로 사는 게 고마우니까. 쩝쩝하고 불안한 통괘함 같은 거 불편해할 거야. 진짜 행복해지려고 할 거야. 지금 나처럼.“

작가의 말
독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그동안 쓴 작품 속 인물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이름이 뭔가요?“
하는 질문을 받곤 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이름’을 콕 집어 말할 수가 없었다. 이젠 할 수 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이름은 ‘김순례’다 ‘순례(巡禮)라는 이름이 가진 자유가 좋다. 삶에서 닥치는 어려움을 ’실패‘보다는 ’경험’으로 여길 수 있는, 부와 명예를 위해 발버둥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괴롬과 죄가 있는 곳‘에서도 ’빛나고 높은 저곳‘을 바라볼 수 있는 아름다운 이름,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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